Correlation between space and time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주와 시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기술 철학자 톰 챗필드는 <광대무변한 우주>에서 아이들과 별을 관찰하는 일상을 소개하면서 우주와 시간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는 아이들과 오래된 별빛을 관측하면서 시간의 시작점과 아득히 먼 우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다시 별들 사이의 텅 빈 공간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주를 통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유럽 우주국의 귄터 하싱어 국장과 케임브리지의 천문학자 게리 길모어, 신경과학자 나이프 알-로드한의 인터뷰도 주목해 주십시오. 세 사람 모두 우주에 관한 다양한 이론은 물론 화성 이주 등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면서도, 우주를 통해 우리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권유합니다. 개미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학자로도 유명한 에드워드 윌슨의 시선은 늘 인간의 존재 또는 본성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을 넘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그는 우리는 예상보다 더 단순한 존재이며 독립적이고 고독하고 허약한 생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역시 각 종에게 맞는 생존 가능한 행성은 단 하나밖에 없으며, 따라서 기회도 단 한 번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우주의 신비를 밝혀낼 과학은 그 영역을 끊임없이 넓혀 가야겠지만, 윌슨은 우리가 두 발 딛고 있는 이 땅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아울러 그곳에서 불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시선은 항상 미지의 세계인 우주를 향해 던지면서도, 우리 손과 발은 나와 내 주변을 향해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지구에 태어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창백한 푸른 집, the earth
지구는 우주라는 거대한 극장에 있는 아주 작은 무대입니다. 저 픽셀의 한 귀퉁이에 사는 사람들이 거의 구별하기도 힘든 또 다른 귀퉁이에 사는 사람들을 침략해 저지르는 끝없는 잔혹 행위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자주 서로를 오해하는지, 얼마나 격렬히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강렬하게 서로를 증오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온갖 군인과 황제들이 저 작은 점의 일부분을 아주 잠시 지배하기 위해 영광과 승리의 이름으로 흘렸던 피의 강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허세, 우리가 중요한 존재라는 자만, 우리가 우주에서 뭔가 특권적인 지위를 차지한다는 망상에 대해 이 창백한 푸른 빛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우리의 행성은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우주의 암흑 속에 외롭게 떠 있는 하나의 반점에 불과합니다. 이 어둠과 끝없는 광활함 속에서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줄 도움의 손길이 어딘가에서 나타날 것이라는 단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천문학은 겸손하고 인격을 쌓는 경험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우리의 작은 세계를 멀리서 찍은 이 사진보다 더 자만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잘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 이 사진은 우리가 서로를 더욱 친절하게 대하고 지금껏 우리에게 알려진 유일한 터전인 이 창백한 지구를 보존하고 아껴야 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해 줍니다.
우리는 별을 향해 간다.
호모 사피엔스는 항상 이동 중이었습니다. 약 8만 년 전, 오늘날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인류의 대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거기서부터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그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같은 경쟁 종을 멸종시켰습니다. 그 후로 수천 년 동안 인류는 이러한 대이동을 반복해 왔습니다. 목표는 항상 똑같았습니다.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더 많은 땅, 더 많은 광물, 더 많은 무역, 더 많은 향신료 등등. 이 과정은 유렵에서 기술 발전과 전 세계를 기독교 군주들의 당연한 지배지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맞물리면서 급격하게 가속화되었습니다. 이로써 유럽 경제가 탐욕스럽게 식민지의 부를 빨아들이고, 계속 부를 축적하기 위해 새로운 외부 세계를 필요로 하는 약탈적인 착취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이동과 식민지화는 지구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인류의 이동은 행성의 경계라는 견고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버질이 말한 별은 신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별과 행성은 문학적 인유나 신성한 예언, 숭배의 대상이었을 뿐 사람들이 천체를 물질적으로 이용하자고 제안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이런 제안 중에는 2024년까지 달에 전초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과 2026년을 목표로 최초의 유인 화성 탐사 계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주의 식민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번에도 더 많은 자원, 더 많은 공간, 그리고 탐험가, 개척자, 모험가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일각에서의 우려도 만만치 않습니다. 우주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면 과연 지구의 문제는 사라질 것일까요? 한번 생각해볼 만한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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